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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, 시.

[시로 세상을 새롭게!] #87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(김광규 시인)(무겁지 않고, 가볍게 감상해봅시다~!)

by 사계문여자 2022. 5. 6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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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, 시.

이번 포스팅에서 읽어볼 시는 김광규 시인의 [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]입니다.

오늘도 힘내서 시를 열심히 읽고,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아닌 나선 계단을 올라가듯,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,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고요!!


4·19가 나던 해 세밑 /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

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/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

하얀 입김 뿜으며 / 열띤 토론을 벌였다

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

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

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

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/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

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/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

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

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/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

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

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/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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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

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

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/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

회비를 만 원씩 걷고 /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

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/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

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/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

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

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

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

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

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

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

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

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

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

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

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

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

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

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

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

부끄럽지 않은가

부끄럽지 않은가

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

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

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


제 포스팅이 온 세상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우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.

이번 시도, 끝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!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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